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황후 여씨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세간의 평가는 [[서태후]], [[가남풍]]과 함께 (가끔 [[측천무후]]와 함께) [[중국 3대 악녀]]로 일컬어진다. [[광무제]]는 후한 건국 이후 여후의 시호를 박탈하고 한고조의 장릉에서 축출했으며, 한문제의 어머니 [[고황후 박씨|박태후]]에게 원래 여후의 시호였던 '고황후'를 올리고 고조와 함께 배향하였다. [* 재밌는 건 정작 박씨의 직계인 문제를 비롯한 전한의 역대 황제들은 여후를 비난한 적이 없다는 것. 정말로 여후에게 큰 문제가 있었다면 박씨의 후손들이 자기 정통성 확립을 위해 여후를 깍아내리지 않았던 것은 기묘한 일이다. 특히 한무제라면 제일 앞장섰을 인물이라...] 그나마 측천무후는 후세에 와서 당시 가치관과 어긋난 것도 있다보니 지나치게 폄하받는 부분도 있어 재평가를 받고 있으나, 여후는 행실 자체도 권력을 쥔 악인의 행태에 가까웠기 때문에 서태후, 가남풍과 마찬가지로 재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 마저도 개인사만 어느정도 변호받고 있다. 그 이유는 정적인 척부인이 잘못된 처세를 보였다 할 지라도 정말 역모를 꾀한 것이 아닌데 지나친 원한과 경계심을 품은 나머지 끔찍하게 살해한 것과[* 척부인은 관련 기록들을 보면 정치적인 감각과 관련 지식들이 부족했기에 황태자 교체에 뛰어들고 주변 상황을 못 읽은 채 무분별하게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. 거기에 황태자 교체 실패 후에는 이렇다할 행적을 보이지 않아 바로 단념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. 즉 다른 역사 속 [[악녀]]들처럼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역모급 중죄를 저지른 적은 없었다는 소리로 여후는 척부인을 벌한다고 쳤으면 폐위와 유배로 충분했고 정 경고 목적으로 죽인다고 쳤으면 율법에 적힌 처형법만 수행하는 것이 옳았다.] 황족인 유씨들을 무분별하게 숙청 및 통제하고 여씨 천하를 만들어 국가 친탈을 시도한 행위[* 사실 해당 부분이 여후의 악행들 중 제일 동기와 목적이 악질적인 쪽인데 그 중 전소제를 감금해 굶겨 죽이는 시해를 저질렀었다. 그러나 전소제가 재위기간이 4년 채도 안되었고 여후의 꼭두각시에 가까워 존재감이 너무 없다보니 여후 비판론에 많이 언급되지 않는 편.]가 여후의 부정적인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. [[한국사]]에서 여후에 대한 비판이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, 다름아닌 [[김부식]]의 《[[삼국사기]]》이다. 《[[삼국사기]]》 <[[신라]]본기> '선덕왕([[선덕여왕]])'편에서 여후와 [[측천무후]]가 국정을 장악한 일을 빗대며 선덕여왕을 사정없이 비판했다.[* 실제로 선덕여왕 시기는 고황후가 집권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대외관계에 있어서 크게 약세를 보였으니 묶여서 비판받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